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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의 계보

최근 수정일

2026-07-11 01:45

순대는 동물의 창자에 선지, 곡물, 채소 등을 채워 익힌 한국의 음식으로, 그 계보는 17세기 조리서의 창자 요리에서 출발해 1970년대 당면순대의 대중화로 크게 갈라진다. 어원은 만주어 '셍기두하(senggi-duha, 피+창자)' 유래설이 유력하다. 오늘날 '순대'라는 한 단어 아래 전통 피순대의 지역 계보와 분식화된 당면순대가 공존한다.

  • 음식디미방(1670년경): 정부인 안동 장씨의 조리서에 실린 개 창자 순대가 문헌상 최초 기록. 표지 제목은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이나 저자 자신의 표기는 권두서명 '음식디미방'이라는 것이 학계 통설.

  • 주방문(1600년대 말): 소창자 순대.

  • 증보산림경제(1766), 규합총서(1809): 소창 순대의 계승.

  • 농정회요(1830년대): 돼지순대의 최초 언급. 오늘날 순대의 직계 조상이 문헌에 등장하는 지점이다.

해방 후까지 순대는 잔치에나 오르는 귀한 음식이었다. 1960년대 정부의 양돈 육성으로 돼지 부속과 창자 값이 떨어졌고, 여기에 값싼 당면을 소로 쓰는 방식이 결합하며 1970년대 초반부터 당면순대가 대중화됐다. 잔치 음식이 분식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 결과 전통 방식의 순대는 역으로 '피순대', '고기순대'라는 별칭으로 구분해 부르게 되었다.

  • 아바이순대 (속초): 함경도 실향민 정착촌인 속초 청호동 아바이마을의 순대. 돼지 대창에 선지, 찹쌀, 우거지, 숙주 등을 채운다. 판매 시작은 1960년대로 흔히 알려져 있으나 실제 상업화는 1990년대 초반으로 보는 서술도 있다.

  • 백암순대 (용인): 백암장 기원. 조선시대 죽성(현 안성 죽산) 장터의 순대 전통이 죽성 퇴조 후 백암장으로 이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중앙식당(1940년대), 제일식당(1964) 등 노포가 계보를 지킨다. 채소 비중이 높아 담백한 것이 특징.

  • 병천순대 (천안): 아우내장터의 순대. 1960년대 초 장터 인근에 돼지고기 가공공장이 들어서며 부산물을 활용해 채소, 선지를 많이 넣은 순대를 만든 것이 기원이다. 원조 격인 청화집은 장날에만 국밥을 팔다 1968년 간판을 걸었다.

  • 피순대 (전주): 당면 대신 선지, 두부, 고기, 다진 곱창을 채우는 계열. 남부시장 조점례남문피순대가 대표 노포다.

  • 부산 돼지국밥과의 접점: 한국의 돼지국밥[문서] 은 북한 향토음식 순대국밥이 피난민과 함께 유입된 뒤, 순대가 귀해지자 편육으로 대체되며 현재 형태가 됐다는 설이 있다. 순대국밥과 돼지국밥이 한 뿌리에서 갈라진 셈이다.

이북식, 지역식 계보가 서울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 산수갑산[식당] : 을지로 인쇄골목의 이북식 순대. 상호부터 함경남도 삼수갑산에서 왔다. 찹쌀,선지,채소를 대창에 채워 사골국물에 삶는 아바이순대를 재현하며, 모둠에 간,오소리감투, 편육이 오른다.

  • 함경도찹쌀순대[식당] : 가락동의 함경도식 찹쌀순대. 순대,고기,김치를 전량 자가제조하며 24시간 연중무휴로 돌아간다.

  • 농민백암순대[식당] : 선릉역 인근. 백암식 순대를 서울에서 대표하는 집으로 '서울 3대 순대국' 단골 후보다.

  • 화목순대국[식당] : 여의도의 토렴식 순댓국. 부드러운 피순대와 쫄깃한 내장의 조합이 정체성이다.

한국의 돼지국밥[문서]
한식[문서]

돼지 고기[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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