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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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 하나로 다시 찾게 되는 곳, 페로즈
평소 스페인 음식은 메뉴도 낯설고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페로즈를 찾게 된 이유도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셰프님이 직접 하몽을 카빙해 준다는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매장은 작고 조용했습니다. 어두운 목재와 낮은 조명, 벽에 꽂힌 스페인 요리책과 소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유행에 맞춰 만든 스페인풍 공간이라기보다, 한 나라의 음식을 오래 공부한 사람의 취향과 시간이 쌓인 작업실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이베리코 베요타 하몽이었습니다. 주문과 동시에 셰프님이 하몽 다리 앞에 서서 한 장씩 직접 썰어주셨습니다. 얇게 저민 슬라이스는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넓게 펼쳐져 나왔고, 상온에 잠시 놓아두자 지방이 녹으며 표면에 윤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접했던 하몽처럼 짠맛이 먼저 밀려오지 않았습니다. 입안의 온도에 지방이 천천히 풀리면서 고소함과 견과류를 닮은 숙성 향이 길게 남았습니다. 함께 나온 피코의 단단하고 마른 식감도 좋았습니다. 하몽의 기름기를 흡수하면서 다음 한 점을 다시 편하게 먹게 해줬습니다. 하몽만큼 좋았던 메뉴는 제주산 딱새우 카르파치오였습니다. 딱새우의 단맛 위에 사과의 산뜻함과 절인 머스터드씨드의 산미가 더해졌습니다. 머스터드씨드가 입안에서 터질 때마다 단맛이 다시 또렷하게 살아났고, 딜의 향이 끝을 가볍게 정리했습니다. 바삭한 빵에 직접 올려 먹는 방식이라 부드러운 딱새우와 빵의 질감 대비도 분명했습니다. 함께 주문한 화이트와의 조화도 좋았습니다. 와인이 새우의 섬세한 맛을 덮지 않았고, 딜과 사과가 가진 향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이어줬습니다. 해산물 빠에야는 리조또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밥을 예상하면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국물기를 충분히 날려 밥알이 서로 뭉치지 않고 흩어졌고, 샤프란과 딱새우 육수의 감칠맛이 밥알 안쪽까지 배어 있었습니다. 새우와 오징어도 질겨지지 않게 익혔으며, 무엇보다 팬 가장자리에 얇게 눌어붙은 부분이 좋았습니다. 바삭한 식감과 응축된 간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그 부분부터 계속 긁어 먹게 됐습니다. 페로즈는 스페인 요리를 화려하게 보여주기보다 기본에 충실하게 풀어내는 곳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직접 카빙한 하몽은 이곳을 대표하는 한 접시였고, 그 메뉴 하나만으로도 다시 방문할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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